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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혁신 아카이브

지역혁신가를 만나다4 - 제주 재주상회 고선영 대표

작성자지역혁신팀

등록일2019-02-01 09:32:40

조회수11,319

지역혁신가를 만나다4 - 제주 재주상회 고선영 대표

 

제주 로컬 매거진 <iiin(인)>에 이어 인스토어[iiin+store]중문, <사계생활>을 만들어낸 고선영 대표 (사진 : 이힘찬)

 

제주에 이렇다 할 로컬 매거진이 없었던 5년 전 어느 날 아름다운 표지를 뽐내며 제주 곳곳에 모습을 드러낸 매거진 <iiin(인)>은 ‘제주의 속내’가 궁금한 여행자들과 지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iiin(인)>을 창간한 재주상회의 고선영 대표는 오로지 콘텐츠의 힘을 믿고 묵묵히 종이 잡지 제작의 길을 걸어왔다고 하는데요. 이제는 잡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티스트, 브랜드, 또는 공공기관과 함께 제주를 무대로 재미난 일들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8월에는 재주상회의 로컬 편집숍 ‘인스토어[iiin+store] 중문’이 문을 열었고 2018년 11월, 도시 콘텐츠 전문기업 어반플레이와 함께 ‘사계생활’이라는 복합문화공간을 오픈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요. 산방산이 보이는 조용한 바닷가 마을 사계리에서 고 대표를 만나 지역 콘텐츠와 공간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책 판매만으로 자립할 수 있는

로컬 매거진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시작했습니다.”

 

 

제주에서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여행전문지에서 여행기자 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늘 돌아다니는 일이 직업이었죠. 십수 년 정도 되니까 그만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생활과 여행을 같이 할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생각하다가 제주에 오기로 했어요. 남편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고 함께 책도 썼습니다. 제주에 와서 한동안은 출장을 다니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점점 서울과 비슷한 삶이 되는 것 같은 거예요. 떠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건 없을까 고민하다가, 잡지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자 생활을 오래 했어도 종이 잡지 제작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2013년 제주에 ‘천만 관광객’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그때까지도 로컬 매거진이 없었어요. 여행하다 보면 작은 도시에도 꼭 로컬 매거진이 있었거든요, 질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지역 소식과 갈만한 곳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어요. 종이 잡지를 만들던 사람이라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어요. 제주에서도 시도가 없었던 게 아니거든요. 창간과 동시에 폐간되기도 했고요. 잡지의 매커니즘을 잘 모르고 시도하면 어려운 매체가 종이 잡지예요. 십수 년간의 현장 경험을 살려서 해보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iiin> 매거진입니다.

 

제가 글을 쓰고 남편이 사진을 찍으니 퀄리티는 나름 보장이 될 것이라 생각을 했고, 인쇄비만 있으면 잡지는 만들 수 있겠다 싶었어요. 사계리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던 동네친구인 부부와 손을 잡고 시작했죠. 처음엔 주변에서 말리다시피 했어요. 지속가능성도 많이 고민했고요. 판매만으로 자립할 수 있는 로컬 매거진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만 5년 동안 잡지를 만들면서 광고, 영업팀은 따로 두지 않고 있어요. 결이 맞는 곳하고만 광고를 진행합니다.

 

 

매거진 <iiin(인)> 2018년 가을호 (사진 출처 : 재주상회 홈페이지 갈무리)

 

 

“제주의 핫플레이스가 어디라고 소개하는 것보다는

제주의 오리진(origin)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매거진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베이스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시죠. 예상했던 일인가요?

사실 매거진 창간호 빼고는 계획해서 한 건 하나도 없었어요. 일하는 범위가 점점 많아지고 넓어졌지만 어떤 방향성이 있었던 건 아니거든요.

 

대신 제주를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 때 이런 건 있었어요. 제주의 여행지, 핫플레이스가 어디라고 소개하는 것보다는 제주의 오리진(origin)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걸 트렌드에 맞게 가공하고 독자와 나누는 거죠. 그러다 보니 콘텐츠가 자연스럽게 쌓이고 시의성에 크게 따르지 않은 거예요. 작년 겨울호를 보더라도 지금 어색하지 않고 재밌게 읽을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렇게 콘텐츠가 아카이빙이 되면서 흥미로운 제안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2015년부터 이니스프리와 ‘제주 컬러 피커’라는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는데요. 가장 아름다운 색은 제주 자연에 있다는 생각으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컬러를 선정해서 화장품을 만들었어요. 2015년은 김녕이었는데, 김녕에 오래 머무르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마을을 관찰하며 컬러 연구를 했죠. 김녕을 모르는 분들도 ‘와랑와랑 김녕파도’색을 보며 제주와 김녕의 바다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이라 의미 있었어요.

 

소비자 반응이 좋았는지 올해까지도 만들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으로도 진출했고요. 소비자들이 콘텐츠가 담긴 제품을 좋아하게 된 점이 주효했던 것 같아요. 산굼부리, 종달리 수국길, 월령리 선인장마을 등의 컬러가 선정되어 제품으로 나왔고, 지금은 2019년 시즌을 위해 새별오름의 컬러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2018 이니스프리 제주 컬러 피커, 월령리 선인장마을 시리즈 (사진 출처 : 이니스프리 홈페이지 갈무리)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 카페 메뉴도 6개월 동안 개발했는데요. 콘텐츠를 먼저 생각하고 음식을 상상해서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 ‘비양도 수프’라는 메뉴는 수프에 메시 포테이토가 비양도처럼 중앙에 세워져 있고 브로콜리와 딱새우가 동동 떠있어요. 비양도 앞바다에서 딱새우가 많이 잡히고 한림에서 브로콜리와 감자가 많이 나거든요. ‘애월 선셋 수프’는 토마토 수프에 동그란 두부가 마치 지는 해처럼 들어있어요. 애월에서는 토마토가 많이 나고요. 이런 경험들이 쌓여 제품도 만들게 되고, 공간 기획 및 운영까지 온 것 같아요.

 

 

“이 공간은 여행자와 마을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해요.”

 

 

이 조용하고 작은 마을 사계리에 공간을 오픈하게 된 이유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요즘은 ‘공간’에 집중하고 있어요. 오늘 찾아오신 이곳 ‘사계생활’은 재주상회와 어반플레이가 함께 설립한 ‘로컬리지’라는 합작회사가 만든 공간이에요. 작은 회사가 모여 별도의 회사를 만든 사례는 아마 없을 거예요. 결도 잘 맞고요.

 

콘텐츠를 만들면서 느낀 한계 중 하나가 독자의 얼굴을 보고 싶은데 그러질 못한다는 점이었어요. 직접 독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계생활에 오는 분들이 <iiin> 매거진의 독자였으면 좋겠고요. 물론 안 그럴 수도 있지만요. 그리고 로컬의 이야기를 담은 공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곳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계리 말고 다른 동네에도 이런 공간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테이블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앉아있고, 젊은 여행자들이 들어오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그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풍경을 늘 생각해요. 이 공간은 여행자와 마을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해요. 사계생활이 생긴 후에 사계리 마을분들도 좋아해 주시고 자주 오세요. 커피도 드시고 자주 들르셔서 잔소리도 하시고 걱정도 해주시는데 그게 너무 좋아요. 사계리 자문 위원장님이 공간 오프닝 때 오셔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거든요. 기대도 많이 하시고요. “너희(재주상회)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라고 말해주셔서 감사하지요.

 

재주상회와 어반플레이 합작회사 ‘로컬리지’가 기획/운영하는 사계생활은 안덕농협 사계지점 건물에 위치해 있다.

농협ATM기는 입구로, 은행창구는 카운터로 활용하고 있다

 

원래 지점장실이었던 공간

 

제주에서 어떤 파트너들과 협업하고 있나요?

재주상회 편집숍들에 들어와 계신 소규모 생산자들이 많으세요. 좋은 제품을 만들지만 브랜딩과 패키징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아요. 그건 저희가 나름 잘한다고 생각하니 함께 하자고 제안하면 다들 흔쾌히 응하셨어요. 서로 손해 보지 않고 서로 작은 이익이라도 가져갈 수 있는 지점을 찾으며 소통해서 그런지 협업이 잘 되고 있어요.

 

사계생활에서 판매 중인 지역 상품들

 

 

“저희는 할 수 있는 만큼 하나씩 하는 게 좋아요.

로컬에서는 관계 맺음이 중요하거든요.”

 

 

제주에서 사업하면서 좋은 점과 힘든 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힘들었던 건 편견어린 시선이었어요.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이 제주의 매거진을 만든다고 하니까요. 지금은 이해하지만 그때는 서운하기도 했죠. 처음에 매거진 만들고 1-2년 동안은 저희를 드러내지 않았어요. 매거진에 회사 주소나 전화번호도 없었고요. 오직 제주의 콘텐츠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처음엔 집에서 하도 안 나와서 동네분들이 요양하러 온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사업하면서 어려움은 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도 그렇고 동료들도 그렇고, 어려우면 ‘어렵구나’ 하지, 힘들어서 발을 동동 구르지는 않아요. 밖에서 보기엔 답답하실 수도 있죠. 좀 영리하게 하지 그러냐는 충고도 듣는데요, 저희는 할 수 있는 만큼 하나씩 하는 게 좋아요. 여유로운 상황이라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무리하게 하지 않아서 덜 힘든 것 같아요. 로컬에서는 관계 맺음이 중요하거든요. 빨리, 잘하려고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하고 있어요.

 

객관적인 어려움도 있긴 합니다. 좋은 동료를 얻기 쉽지 않아요. 제주시에라도 있었다면 청년들과의 접점이 많아졌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제주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은 제주보다 서울에 더 가고 싶어 하더라고요. 사계리까지 오려고 하는 제주 청년이 별로 없어요. 반대로 제주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외지분들은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외지에서 온 분들이 대부분 구성원이 되었어요.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의 10분의 1도 못 했어요.

제주는 여전히 블루오션입니다.”

 

 

사업하며 느끼는 제주만의 지역적인 특성이 있나요?

콘텐츠가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섬이라는 특수성, 역사적 특성이 있죠. 제주에서 계간지를 어떻게 5년 동안 낼 수 있냐는 질문은 ‘더 할 얘기가 있냐’는 건데요.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의 10분의 1도 못 한 것 같습니다. 콘텐츠 만드는 사람들에겐 정말 큰 매력이죠. 덜 갖추어졌기 때문에 해야 할 일도 정말 많아요. 제주는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아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큰 장점이죠.

 

한계점은 없나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말 깊이 생각해 보는데요, 진짜 없어요.

 

제주는 살기에 어떤 곳인가요?

저는 매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주에 살면 정말 좋은 환경을 볼 수 있어요. 정신건강에도 좋은 것 같아요. 특별히 스트레스도 없는 편이고요. 좀 느려지는 건 있어요. 이 부분을 잘 모르는 서울 사람들은 놀랄 때가 있어요. 피드백도 좀 늦게 되지요.(웃음) 안 좋고 불편한 점은 별로 없어요. 제가 환경에 잘 적응하는 편이어서 더 그렇고요.

 

사계생활 옥상에서 보이는 산방산과 마을

사계생활 2층에서 열리는 ‘소락소락 제주’ 전시. 이 공간은 코워킹 스페이스가 될 예정이다.

 

 

제주에서 사업하기, 누군가에게 권하실 수 있나요?

너무 당연합니다. 하라고 하고 싶어요. 저희가 매거진을 만들지만 또 다른 분야의 로컬 매거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주에 편집숍이 많이 생겨도 대부분 자체 생산하는 곳이 적거든요, 자기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진 물건을 파는 공간도 많이 생겨야 하고 그런 생산자도 많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주는 블루오션입니다. 정말 할 일이 많아요.

 

제주 외의 다른 지역 비즈니스 중 관심 있게 보는 곳, 참고한 곳이 있나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전국의 많은 혁신가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국토부 산하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와 도시재생 스타트업 관련 자료집을 만들고 있어요. 세간의 박경아 대표가 맡고 있는 *자온길 프로젝트는 정말 눈물나도록 훌륭했어요. 광주 1913 송정역시장 프로젝트*도 정말 좋았어요. 제주에서는 옥림여관을 새롭게 탄생시킬 베드라디오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많아요.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 :  www.auri.re.kr

*자온길 프로젝트 : 충북 부여 규암면 수북로 일원을 되살리는 작업.

*광주 1913 송정역시장 프로젝트 : 1913년부터 100여 년간 운영된 ‘매일송정역시장’을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를 통해 2016년 젊은 상인들을 입점시켜 재개장하는 프로젝트.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2014년에 <iiin>을 창간하고 그 해에는 계간지 4권만 만들었어요. 버티는 1년이 지나고 나니 외주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정말 좋은 곳과 많이 일했죠. 매출이 늘어서 좋았고 바쁘게 일했어요. 2018년 초에 돌아보니 업무의 70%가 외주더라고요. 외주 작업도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 많지만 우리만의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구조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재주상회 이름으로 하는 일에 더 집중해야겠다고 판단해 편집숍 <인스토어>를 만들었어요. 2018년 7월에 인스토어 중문점을 론칭하고 지금의 ‘사계생활’까지 이어졌지요.

 

앞으로는 재주상회와 로컬리지의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사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계획대로 살아지진 않잖아요.(웃음) 하지만 동료들과 재밌게 일하고 싶어요. 기분 좋게요. 사실 일이 너무 많아서 미안하거든요. 동료들이 행복한 것, 그게 재주상회와 로컬리지의 목표입니다.

 

 

글  정희정

사진  이힘찬

편집  김인경

교정·교열  윤정아

발행  어떤생각이든 연구소

총괄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지역혁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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